데이빗 씨맨즈의 '탓'은 고난과 상처에 대한 성경적 시야를 제공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치유 일정 및 회복 과정 속에는 우리 모두가 상처를 뛰어 넘어 용서로, 요행심을 버리고 책임감 있는 행동으로, 책임 전가에서 믿음으로 발걸음을 내딛어야 할 때가 반드시 있다고 강조한다.
내가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나의 고난에 대해 나름대로 분석하고 결론을 내렸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의심하지는 않았기에, 나는 나의 고난이 근원적으로는 내 죄로 인한 것이라 여겼고, 결과적으로는 내가 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난과 사랑이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긴 했지만, 나는 대체로 좋은 일이 있을 때 "하나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시는 구나"라고 더 강하게 확신하는 편이었다.
한편, 저자는 비성경적인 가정에 근거한 비성경적인 기대에 대해 설명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재난과 사고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주시지 않는다면, 그분의 사랑이나 우리의 사랑 둘 중 하나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신호라고 하는 것은 비성경적 가정이다. 즉, 우리가 비극을 당할 때 하나님의 개입여부에 따라 그분의 사랑의 정도나 우리의 믿음의 정도를 판단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종교지도자들은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지라"고 조롱하면서, 똑같은 사고의 오류를 예수님께 그대로 적용시킨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수님을 그 자리에서 구해 주시는 것보다 더 위대한 일을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고통의 자리에 있는 것이 단순히 그들의 신앙성숙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는 것, 즉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다. 따라서 모든 고난 앞에서 "나는 영적 지진아라서 이런 일을 당하고 있어"라는 일차원적인 단정적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
문제의 주요원인이 자신의 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에서 성취된 그분의 용서가 주는 평강이 그야말로 경이와 사랑과 찬송이 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잔혹한 죄에 상처를 입어 어렸을 때부터 영적 기능이 심각하게 훼손된 사람들은 믿음을 갖기가 그만큼 더 어려워진다. 타인의 죄로 인해 상한 감정은 그 사람의 관념과 사고를 철저히 왜곡시켜 하나님이 좋으신 분이라는 사실을 진심으로 믿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런데 십자가는, 그런 상처받은 사람들과 완전히 동화되기 위해 예수님 역시 피해자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상처 받은 자는 자신들에게는 얼마든지 적대감을 품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이러한 분노를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으시고 그 사람과 함께 그 사람을 위해 우신다. 따라서 내게 일어나는 분노에 대해 죄의식을 갖기 보다는 예수님이 그 고통에 대해 알아주신다는 것을 기억할 때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해 "예수님도 용서하셨으니 너도 용서해"라는 메시지만 받아왔었는데, "예수님도 피해자의 위치에 계셨기 때문에 너를 이해해"라는 메시지를 받을 수 있었다.
여러가지 책임전가 유형으로, 과거집착형, 동경형, 자기 증오형, 변명형, 불순종형, 요행심형이 제시되어 있는데, 나는 그 중에서 동경형과 요행심형에 가깝다고 느낀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훈련 동안 애굽에서 좋았던 일들만 골라서 기억하며, 놀라운 기적들에 대해 더 이상 감사하지 않고, 현재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는다. 동경의 눈빛으로 뒤를 돌아보면, 쾌락과 성공만 부각되고 실패는 기억속에서 사라진다. 한편,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혹시 잘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신자와 결혼하는 것은 현실을 직면하지 못하는 정서적, 영적 문제이다. 또한, 요행심에 빠져 미래가 전혀 없는 관계에 매달리는 결과로 더 이상 불가능한 결혼생활을 비현실적인 생각으로 질질 끄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에게는 이혼이 필요한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경건한 용기가 필요하다. 하나님은 결혼의 종식 속에서도 새로운 삶을 끌어 내실 수 있다... 이러한 말들이 내게 위로가 되었다.
야고보는 온전한 치유와 회복에는 반드시 그룹 은혜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소그룹이 사랑과 수용과 후원, 직면과 책임, 기도의 기본 요소를 가질 때 치유가 일어난다.
요셉은 무죄한 피해자, 의로운 피해자, 잊혀진 피해자로 살았지만, 자신의 신앙뿐 아니라 정체감과 자존감과 자신감을 지킬 수 있었다. 그는 결코 그 피해 사실을 핑계 삼지 않았으며, 그 결과 한번도 자신이 피해자라는 정체감에 빠지지 않았다. 오랜 세월 나는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해 나쁘게 말하고, 나는 피해자임을 밝히며, 그 감정에 매달려 하나님께 징징거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왔다. 상처, 죄, 실패 없이도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이루실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타락하고 불완전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이 손에 들고 일하셔야 할 재료는 거의 모두 그런 것들뿐이다. 하나님이 그 재료로 일하실 수 있도록 그것을 그분께 드리는 거이 우리의 할 일이다. 나의 고통과 상처가 그저 무의미하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 믿으며, 먼 훗날이라도 더 분명히 그 의미를 깨닫게 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