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보의 마지막 페이지에 실린 글을 읽으면서, 예전에 비슷한 경험을 하고 썼던 글이 생각나서 나누고자 올림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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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면 속으리
몇 일전, 저녁식사에 초대되어 갈 일이 있었다. 이사한지가 얼마 안된 집이라, 작은 장식품이라도 사 가면 좋을 듯해서 선물가게에 들렀다. 작은 아이의 손을 잡고 본차이나니 크리스탈이니 이것저것 구경하기 즐거운 고가품으로 눈을 만족시키고, 적당한 수준의 사기인형을 골라서, 박스포장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한 2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약간은 말랐지만 건강해 보이는 백인남자가 들어와서 점원에게 말을 건넸다. 요지는, 친구들이랑 어제 저녁에 인근 대학에서 하키를 했는데 친구가 자기만 남겨두고 자기 가방을 싣고 가 버렸다나. 그래서 수중에 가진 돈이 전혀 없어서, 어제밤 노숙을 하고 일하러 가지도 못했다고. 집이 뉴마켓이라는 토론토 외곽이라 버스값이 10불인데 빌려주면 내일 꼭 갚겠다고.
마음 좋아보이는 여자 점원은 캐셔박스에 있는 돈은 손댈 수는 없고 자기 돈을 주겠다고 지갑을 뒤적였다. 하지만 2불50센트가 현재 가지고 있는 전부라나. 그러자 그 남자 계산대 앞에 서 있는 내게로 구원의 눈길을 보내며 되는대로라도 돈을 좀 빌려달란다. 내일 꼭 갚겠다며.
삼 년 전쯤 서울역으로 연결된 지하철 입구에서, 그때도 20대 중반쯤의 약간은 마르고 하지만 건강해 보이는 남자가, 꼭 오늘 처럼 작은애 손을 잡고 역으로 향하는 내게 다가와서는, 집이 포항인데 택시에 지갑을 두고 내려서 차비가 없다고 2만원만 빌려달라고 그랬었다. 행색은 멀쩡했지만 얼핏 본 가방 모퉁이가 낡아 있는 품이 왠지 여러 날 노숙의 피곤함이 느껴졌다.
사는데 두려움이 없고, 나의 노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으로 믿었던 20대에 나는 적선을 하지 않았다. 나의 값싼 동정이 그들의 노동의지를 꺾게 되고 안일을 부추겨 결국에는 그들에게 이롭지 못하다고 믿었기에, 일할 수 있어 보이는 자들에겐 동전 한닢 내밀지 않았다.
아이를 낳아 기르고, 세월의 무게가 더 해가면서 나는 내 의지와 노력과는 때론 무관하게 삶은 스스로 숨쉬어간다는 걸 알게 되면서 내 존재의 보잘것 없음에 머리 숙이며 오만함을 거두게 되었다. 멀쩡한 신체로 지하철입구에 앉아서 구걸하는 자, 일상의 짬을 내어 식사 혹은 차를 마시는 이들에게 구차하게 껌이나 볼펜을 들이미는 아이들. 어떠한 삶의 몫이 그들에게 주어졌기에 현실이 그토록 가혹한 것일까? 그들 중 일부는 구걸이 삶을 연명하는 최선의 수단일 수도 있을 것이며, 또 어떤 이들은 일시적인 절망과 체념의 몸짓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삼 년 전의 서울의 그 청년은 이 만원을 갚지 않았다. 처음엔 내 어수룩함이 속상했다. 그렇게 돈을 벌 수도 있음을 알게 해서 그 청년의 장래를 망치는데 내가 한 몫을 한 것일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길가는 이에게 거짓말해서 돈을 얻어내는 것이 쉬웠겠는가? 모르긴 해도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웠으리라. 언젠가는 속아 준 이에게 감사하며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그 청년을 위해 짧은 기도를 했다. 이런게 인연인가 보다 하고.
며칠이 지났지만 이번의 청년에게서도 소식이 없다. 이번엔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다. 10불을 건네면서, 서울의 청년을 생각해 내며 행운을 빌어줬었다. 언젠가는 그 이상을 다른 이에게 베풀수 있는 자가 됐으면 하는 맘으로. 그리고 내 아이들이나 노모가 어느날 뜻하지 않게 곤란을 당해서 낯선 이에게 도움을 청해야만 할 때, 속아주듯 믿어주는 이들로 해서 곤경을 면 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나는 그들을 판단하려 하지 않는다. 왜 그렇게 밖에 못 사냐고 비난 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잠시 만나서 10불을 건네고 짧은 기도를 하게 됨도, 내 의지대로만 굴러가지 않는 삶이 주는 인연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또 다시 누군가 내게 차비를 구한다면, 또 속을 것 이다. 비행기 삯만 아니라면.
ⓒ 2003 이성화